불자동차

 도심을 뒤흔드는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는 다급하고도 간절하다. 질주하는 소방차의 대열을 바라보면서 나는 늘 인간과 세상에 대해서 안도감을 느낀다. 재난에 처한 인간을 향하여, 그 재난의 한복판으로 달려드는 건장한 젊은이들이 저렇게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은 인간의 인간다움이 아직도 남아 있고, 국가의 기능이 정확하고도 아름답게 작동되고 있다는 신뢰감을 느끼게 한다. 인간만이 인간을 구할 수 있고, 인간만이 인간에게 다가갈 수 있으며, 인간만이 인간을 위로할 수 있다는 그 단순명료한 진실을 나는 질주하는 소방차를 바라보면서 확인한다. 달려가는 소방차의 대열을 향해 나는 늘 내 마음의 기도를 전했다. 살려서 돌아오라, 그리고 살아서 돌아오라.

 자동차가 자동차에 막혀서 오도 가도 못하는 도심 한복판을 사이렌으로 헤치며 나아가는 소방차의 대열은 아름답고 고귀한 풍경이다. 그것은 인간이 인간에게 베푸는 절박한 신뢰이며 사랑이다.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에 구조받을 권리가 있고 또 인간이기 때문에 재난에 처한 인간을 구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 자명한 윤리가 매일매일의 도심에서 확인되고 있다.

 새빨간 소방차들이 번쩍이는 고가사다리를 싣고 꽉 막힌 거리에서 진로를 찾지 못해 안타까워할 때도 본부상황실이 출동대열을 다그치는 고함소리가 무전기에서 윙윙거린다. 사이렌 소리가 고막을 찌를 때 나는 문득 삶이란 경건한 것이다라는 생각에 잠긴다. 인간은 재난 앞에 경건해야 하고 재난에 처한 인간에 대해서 경건해야 한다고 사이렌 소리는 이 세상 을 향해 외친다. 외치면서, 소리의 끝을 길게 끌어가며 내가 덤벼들 수 없는 재난의 복판을 향하여 달려간다. 도심을 질주하는 소방차의 대열을 향해, 나는 소방차 만세, 인간 만세를 외치고 싶었다.

 나는 소방관이 아니지만, 여러 소방장비들의 기능과 작동방식에 대해서 약간의 지식을 가지고 있다. 나의 지식은 물론 소방장비에 관한 책을 읽어서 얻은 것이고 경험에 따른 것은 아니다. 또 내 작은 지식은 대부분 구식 장비들에 관한 것이고 요즘 소방대원들이 사용하는 신형 장비에 관해서는 전혀 모른다.

 어느 날 술 마시는 자리에서 내 친구들에게 여러 소방장비들의 기능과 작동방식을 열거하면서, 그 기능 하나하나가 어떻게 인간의 생명과 연결되는 것인지를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도심을 질주하는 소방차가 어째서 아름다운 것인지를 설명해주었다. 내 친구들은 별 감동이 없었다. 술 마시는 자리에서 왜 불 끄는 얘기를 하느냐고 나를 나무라는 친구도 있었다. 나는 실망했고, 친구들이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해서 답답했다.

 소방서와 소방관에 대한 내 유년의 추억은 슬프고도 따뜻하다. 전쟁이 끝나고, 초등학생이던 나는 잿더미가 된 서울로 돌아왔다. 학교 건물이 무너져서 운동장에 천막을 짓고 그 안에서 공부했다. 아이들은 모두 머리에 부스럼이 나서 공부시간에도 긁어댔고 배가 고파서 우유떡을 빨아먹었다. 우리 가난한 마을에 소방서가 있었다. 그때 소방서는 높다란 망루를 세웠고 그 망루 꼭대기에서 소방관이 마을을 내려다보며 연기와 불꽃을 살피고 있었다. 소방서 망루는 마을에서 가장 높은 구조물이었고, 우리 마을의, 말하자면 랜드마크였다. 내 유년을 지배했던 이 세계의 느낌은 한마디로 불안감이었다. 이 세상이 통째로 뿌리 뽑혀서 어디론지 떠내려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 시절에, 남루한 마을 어귀에 높이 솟은 소방서 망루를 올려다보면서 나는 이 세상에 대한 안도감을 겨우 느낄 수 있었다. 아, 저렇게 높은 망루 위에서 소방관 아저씨가 우리 마을을 내려다보면서 살피고 있구나...... 그 안도감은 따뜻하고도 눈물겨웠다. 나는 그 망루가 떠내려가는 세상을 붙잡아서 지탱해주는 튼튼한 보루라고 믿었다. 밤중에 잠이 깨서, 숨을 죽이고 누워 있을 때, 멀리서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아, 누군가가 죽음을 헤매고 있는데, 또 소방관 아저씨들이 달려가고 있구나...... 그때는 사방에서 불이 났고 매일 밤, 매일 새벽마다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나는 엄마 옆에 누워서 불구덩이 속에 쓰러진 사람들과 불구덩이 속으로 달려드는 소방관 아저씨들을 생각하면서 가슴을 졸였다. 나는 때대로 무서워서 울었다. 엄마는 내가 우는지도 모르고 잠들어 있었다. 나는 울면서 그 소방관 아저씨들이 무사히 살아서 돌아오기를 빌었다. 그러자 무서운 밤이 덜 무서워졌고, 세상은 문득 따듯하게 느껴졌다. 학교에 제출하는 신상조사서에 장래희망을 쓰라는 난이 있었는데, 나는 거기에 '소방수'라고 적기도 했다. 나는 소방관이 되지는 못했지만,유년의 소방서 망루는 그 어떤 아름다운 동화보다도 더 크게 내 마음을 버티어 주었다.

 1970년대 중반에 나는 조간신문의 현장기자가 되어 수많은 화재 현장을 취재했다. 그때는 스프링쿨러 시설이 도입되던 초기였고, 고가사다리도 지금처럼 높지 않아서 7~8층 이상은 접근하지 못했다. 대분분의 가정에서 난방과 취사의 연료로 연탄을 사용했고, 소방도로가 정비 되어 있지 않았다. 폭탄처럼 생긴 프로판가스통도 처음으로 등장했다. 내다버린 연탄재에 불이 남아 있어서 주택가는 매일 밤 불이 났고, 겨울이면 서울 시내에서 하룻밤에 대여섯 군데 불이 났다. 재래 시장이나 영세민 밀집지역에 불이 나면 삽시간에 모든 점포와 마을이 불바다가 되었고 사람들은 잿더미에 몰려들어 울부짖었다. 고층빌딩에 불이 나면 고가사다리가 접근하지 못하는 높은 층에는 사람들이 베란다에 매달려 울부짖다가 떨어져서 죽었고, 러브호텔에 불이 나면 남자들은 동침하던 여자들을 밀쳐버리고 혼자서 살겠다고 팬티도 못 걸치고 뛰쳐 나오곤 했다.

 그 많은 화재 현장에서, 나는 다시 내유년의 소방관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들과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겨울이면, 그 소방대원들은 밤새도록 현장에서 현장으로 이동했다. 남대문시장에서 불이 나서 서울 시내 소방 병력과 장비들이 총출동했는데, 또 북아현동 주택가에서 불이 나서 남대문시장에 와있던 병력과 장비들을 북아현동으로 이동 배치하면 또 서울 북부지역에서 불이나서 다시 이동 배치하는 식이었다. 

 겨울밤 내내 소방대들은 도심을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갈팡질팡했다. 그 시절에는 소방차에 좌석이 넉넉지 않아서 현장으로 투입되는 병력들은 펌프차나 고가 사다리차 뒤쪽에 설치된 쇠막대기를 붙잡고 서서 달려갔다.

 소방도로가 없는 동네에서 펌프차는 현장에 접근할 수 없었다. 동네 어귀에 차를 세워놓고 대원들은 소방호스를 길게 연결해가며 현장에 접근해 들어갔다. 관창수가 맨 앞에 서고 보조대원들이 호스를 짊어지고 뒤를 따라갔다. 수압을 받는 호스는 뱀처럼 꿈틀거렸다. 겨울에는 물줄기를 쏘아대는 관창수들의 방열복 소매에 고드름이 달려서 버스럭거렸다. 소화전이 얼어붙고 물이 다 떨어져버리면 선착대는 발을 구르며 후속대의 도착을 기다렸다. 

 타오르는 불길 속을 향해 소방대장은 지시했다.
 - 진입하라!
 그는 자신의 부하들에게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라고 명령하고 있었다. 파괴 장비를 든 특공대원들이 그 명령을 받들어 불속으로 들어갔고, 특공대원들의 뒤쪽에서 동료들이 '안개 쏴'로 연기를 걷어내며 특공대원들을 엄호했다.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간 동료들의 안전을 다른 대원들이 살피고 있었고, 동료의 위난을 구하러 들어갈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호스를 연결해야만 관창수들은 앞으로 나아 갈 수 있고, 동료와 동료 사이를 인간의 마음의 끈으로 연결해야만, 그 끈을 잡고서 특공대원들은 불구덩이를 헤치고 암흑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추운 겨울날의 화재 현장에서 알았다.

 고층빌딩에 불이 나면 소방대원들은 굴절사다리를 높이 올려서 베란다에서 울부짖는 사람들을 실어 내렸다. 그리고 또다른 대원들은 불타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인명을 수색했다. 울부짖던 사람들이 사다리를 타고 땅 위에 내려오면 구경하던 사람들이 함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그러나 굴절사다리가 닿지 못하는 높은 층에서 사람들은 불길과 연기를 견디다못해 아래로 뛰어내렸다. 소방대원들은 땅 위에 매트리스나 그물망을 펼쳐놓고 추락하는 사람들을 받아냈다. 그 현장은 지옥 속에서 펼쳐지는 찬란한 아름다움이였다.

 그 무렵, 초년병 기자였던 나는 화재 현장에서 자꾸만 불 쪽으로, 관창수 쪽으로 접근했다. 대체로 미숙한 기자들은 현장으로 빨려들어가서 바싹 접근하게 마련이다. 소방관들은 악을 쓰면서 나를 말렸다.
 - 야, 너 기자야? 기자는 뒤로 빠져, 너 죽으려고 그래!
- 야, 저 뒤로 가 있어.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덤벼들어, 인마.

 어떤 소방관들은 관창수 쪽으로 접근하는 나에게 물을 끼얹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해서 소방관 몇 명을 친구로 사귈수 있었다. 그들은 이제 모두 은퇴했고 그 후배들이 관창을 잡고 있다.

 많은 소방관들이 불구덩이 속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들 대부분이 젊은이들이었다. 갓난아기를 둔 신혼의 가장도 있었고 아직 미혼인 젊은이들도 있었다. 불구덩이 속에서 질식한 사람들을 찾아내 들쳐업고 나오다가 무너지는 건물에 깔린 대원들도 있었고, 어둠 속에서 갑자기 프로판가스통이 터져서 산화한 대원들도 있었다. 불타는 건물의 지붕 위로 올라가서 도끼로 지붕을 때려부수다가 무너지는 건물과 함께 숨진 대원들도 있었다.

 나는 그 대원들의 죽음의 현장을 여러번 찾아갔다. 먼 지방도시에서 순직사고가 났을 때도 고속버스를 타고 가서 현장을 살폈다. 순직한 대원의 젊은 부인이 아기를 업고 나와 울부짖었다. 무너지고 녹아내린 잿더미 속에서 소방대원이 순직한 자리를 동료 대원들이 알려주었다. 건물이 온통 불길에 휩쓸려 있을 때, 그렇게 깊숙한 곳까지 어떻게 들어갈 수가 있었을까.

 암흑 속에서 고립된 대원이 어둠을 뚫고 다가오는 동료의 전짓불 빛을 기다리고 있었을 순간을 생각하면서 나는 울음을 참았다. 아무도 그에게 다가가지 못했고, 그는 결국 고립 속에서 숨을 거두었다. 인간에게 다른 인간이 다가오지 않으면 고립된 인간은 죽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또 많은 소방대원들이 암흑과 화염 속에 고립되어 있다가동료들에 의해 구출 되었다. 고립된 대원들이 그 암흑을 뚫고 다가오는 동료의 인기척을 느꼈을 때, 그는 살아서 돌아올 수 있었다. 다가오고 있는 인기척, 그것이 인간의 희망인 것이다.

 사회가 고도로 조직화되고 세분화될수록 사회의 밀도는 높아가고 인간은 고립되게 마련이다. 다들 제각기 아파트와 오피스텔과 자동차와 밀실 안에 들어앉아 있다. 그 수많은 세포들의 틈새에 재난은 복병처럼 숨어 있다. 밀실에 고립된 인간들은 재난을 돌파하는 능력이 전혀 없다. 소방대원들이 그 밀실을 깨고 들어가 인간을 구한다. 지금 소방대원들의 역할은 화재진압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재난구조로 확대되고 있다. 산불, 수재, 해양사고, 교통사고, 붕괴, 매몰, 추락, 응급환자 수송뿐 아니라 아파트 문 열어주기, 미친 개 포획과 한강철교 행거에 올라가서 자살하겠다고 날뛰는 사람을 달래서 끌고 내려오는 일까지도 모두 다 그들의 업무다. 핸드폰이 보급된 후에 산악 안전사고로 목숨을 잃는 일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핸드폰으로 119단추를 누르면 장비를 걸머진 젊은 대원들이 산꼭대기나 계곡으로 즉각 달려오기 때문이다. 그 대원들은 이 사회의 기초를 지키고 버티어주는 안전판이고, 인간에 대한 사랑과 신뢰를 실천하는 보살들이다. 그들은 인간에게 다가오는 인기척이다. 소방차가 도심을 질주할 때 나는 보살이 화염 속의 중생을 향해 달려가고 있음을 안다. 보살은 늘 우리 곁에 있다. 어린아이들이 질주하는 소방차에 열광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그 어린아이들처럼, 우리 사회가 소방대원들의 사명의 고귀함을 인식하고 그들을 응원하고 격려해주기를 바란다.

+ Recent posts